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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리포트/한국어 문법

04. 비음화, 유음화, 구개음화

by 밸라워 2022. 12. 5.

1. 비음화

비음화는 편하게 발음하기 위한 발음의 경제성이 작용한 대표적인 동화 현상이다. 비음화에는 순행 비음화와 역행 비음화가 있다.  파열음 'ㅂ, ㄷ, ㄱ'이 비음 'ㅁ, ㄴ' 앞에서 각각 같은 조음 위치의 비음 'ㅁ, ㄴ, ㅇ'으로 바뀌는 음운 현상은 역행 비음화이다. 앞 음소가 뒤 음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역행'이라는 표현을 쓴다. 

 

(1) 파열음 → 비음(역행 비음화)

이 파열음의 비음화는 세 가지로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ㄱ'은 비음 앞에서 'ㅇ'으로 발음된다. 두 번째, 'ㄷ'은 비음 앞에서 'ㄴ'으로 발음된다. 세 번째, 'ㅂ'은 비음 앞에서 'ㅁ'으로 발음된다. 각각의 음소가 비음 앞에서 전환되는 양상을 이해하려면 자음의 체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자음은 목청에서 올라오는 공기가 구강 구조 안에서 장애를 받아 나는 소리이다. 장애가 일어나는 구간을 자음의 '조음 위치'라고 한다. 비음화의 정의에서 '파열음이 같은 조음 위치의 비음'으로 바뀐다고 한 것이 중요하다. 비읍이 미음으로, 디귿이 니은으로, 기역이 이응으로 바뀌어 발음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읍과 미음은 양순음(입술소리)으로 조음 위치가 동일하다. (이 둘은 조음 방법의 카테고리에서 파열음, 비음으로 다를 뿐이다) 마찬가지로 디귿과 니은도 치경음(윗잇몸 혀끝 소리)으로 조음 위치가 동일하고 기역과 이응도 연구개음(여린입천장 소리)으로 조음 위치가 동일함을 볼 수 있다. 

 

  • 'ㄱ'이 비음 앞에서 'ㅇ'으로 발음 : 국민[궁민], 닦는다[당는다], 겪는다[경는다], 익는다[잉는다]
  • 'ㄷ'이 비음 앞에서 'ㄴ'으로 발음 : 닫는다[단는다], 겉모양[건모양], 쫓는[쫀는]
  • 'ㅂ'이 비음 앞에서 'ㅁ'으로 발음 : 밥물[밤물], 앞니[암니], 갚는다[감는다]

(2) 유음 → 비음(순행 비음화)

유음 'ㄹ'이 'ㄹ'이 아닌 다른 자음 뒤에서 'ㄴ'으로 바뀌어 발음되는 현상이다. 자음 니은이 치조 비음이기 때문에 이를 '치조 비음화'라고도 한다. 대표적으로 종로[종노], 섭리[섬니], 남루하다[남누하다], 결단력[결딴녁]의 예시가 있다. 실제로 종로, 섭리, 남루, 결단력에서 'ㄹ'을 살려서 발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자음을 살려서 발음하려고 하면 어딘가 어색한 발음이 된다. 유음 리을은 어두 초성에 오거나 모음과 유음 뒤에서만 살려서 발음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유음 자신이 비음으로 동화되거나, 비음을 유음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발음을 편리하게 하려는 경제성이 담겨 있다.

 

2. 유음화

비음 'ㄴ'이 유음 'ㄹ'의 앞이나 뒤에 올 때 'ㄹ'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역시 순행 유음화와 역행 유음화로 나눌 수 있다. 니은이 뒤에 있는 리을의 영향을 받아 리을로 바뀌었으면 역행 유음화, 반대로 니은이 앞에 있는 리을의 영향을 받아 리을로 바뀌었다면 순행 유음화이다. 니은이 유음 'ㄹ'의 영향을 받아 똑같은 유음 'ㄹ'이 된다는 점에서 이 동화는 '완전 동화'에 속한다.

예시로는 찰나[찰라], 실내[실래], 훑는다[훌른다]/ 신라[실라], 논리[놀리], 난로[날로], 한라[할라] 등이 있다. 

 

 

3. 구개음화

구개음화는 끝소리가 'ㄷ, ㅌ'인 형태소가 모음 [이]나 반모음 [j]로 시작하는 형식 형태소와 만나 'ㄷ, ㅌ'이 'ㅈ, ㅊ'으로 바뀌는 현상을 의미한다. 음운 변동은 대개 자음과 자음이, 모음과 모음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구개음화는 특이하게 모음과 자음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구개음화라는 용어는 '구개음'과 '화'로 나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구개음이 아닌 자음이 구개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개음이란 무엇일까? 구개음은 조음 위치에 따라 자음을 분류할 때 센 입천장에서 나는 소리로 엄밀하게 경구개음(센입천장소리)을 말한다. 한국어의 자음에서 'ㅈ, ㅉ, ㅊ'이 대표적인 구개음이다. 이들은 평음, 경음, 격음으로 대립하는 삼지적 상관속을 이룬다. 모두 조음 방법으로는 파찰음이자 조음 위치로는 경구개음에 속한 하나의 세트로 보면 된다. 구강 구조에서 경구개(센 입천장) 뒤쪽으로는 연구개(여린입천장)라 불리는 구간이 존재하는데 '구개음'은 이러한 연구개음과 구별되는 경구개음을 지칭한다. 

 

모든 음운 변동은 입력형이 특정한 환경에 처할 때 특정한 출력형으로 나타난다. 구개음화 역시 입력형과 환경, 그리고 출력형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구개음화에서 입력형은 치조 파열음인 'ㄷ'과 'ㅌ'이다. 환경은 이 자음과 단모음 [이] 또는 반모음 [j]로 시작하는 형식 형태소와 연쇄할 때이다. 출력형은 각각 경구개음인 'ㅈ' 또는 'ㅊ'이다. 이때 경음 'ㄸ'은 구개음화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시로 굳이[구지], 같이[가치]가 있다. '굳이'의 형태소를 나누어보면 '굳-'과 '-이'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굳-'은 '굳다'의 어간으로 형용사이고 '-이'는 형용사 뒤에 붙어 부사를 만드는 부사 파생 접미사이다. 따라서 '굳-'은 실질적인 뜻을 가진 실질 형태소, 부사파생접미사 '-이'는 문법 기능을 수행하는 형식 형태소이다. 구개음화의 정의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ㄷ, ㅌ'이 모음 '이'나 반모음 [j]로 시작하는 형식 형태소와 만날 때 'ㅈ, ㅊ'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하였다. '굳이'가 [구지]로 발음되는 것은 이렇게 구개음화가 발생할 환경이 모두 갖춰진 결과이다. '굳-'과 '-이'로 형태소 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구개음화가 발생한 지점은 형태소 경계에 있는 것이다. 

 

구개음화를 일으키는 모음의 조건을 '형식 형태소'로 한정시키는 것은 표기와 발음의 괴리 때문이다. 하늘과 땅을 뜻하는 '천지'의 예시를 들면 이는 문헌에 나타난바 본래 '텬디'였으나 발음이 점차 자연스럽게 구개음화되어 [천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천'과 '지'는 각각 뜻을 가진 실질 형태소이다. 이 두 실질 형태소의 연쇄에서도 구개음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자음 'ㄷ, ㅌ' 뒤에 모음 [i], [j]가 오면 그 모음이 속한 형태소가 실질 형태소이든 형식 형태소이든 구개음화의 적용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하여 20세기 초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당시에 표기와 발음의 통일을 도모하였고 '텬디', '신기생뎐' 등의 표기를 발음대로 '천지', '신기생전' 등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다만 뒤에 문법 형태소가 자리하게 될 경우에 그 표기를 발음대로 바꾸지 않고 기본 형태를 밝혀 그대로 표기하기로 했다. 따라서 '굳이'나 '같이' 등의 현대 국어에서 구개음화의 적용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사례들은 음운 변동 규칙을 도입하여야 표기와 발음상의 괴리가 설명되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구개음화를 서술할 때 모음의 조건을 형식 형태소로 제한하고 있다. 이미 발음대로 표기법이 바뀐 단어들은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기 때문에 음운 변동이 일어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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